이 글은 ‘지역사회 돌봄(community care)’의 개념을 간략히 살펴본 후 푸코의 작업이 어떻게 학습 장애에 관한 새로운 사유를 촉발하는지 검토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새로운 접근법이 갖는 강점을 짤막한 사례를 통해 제시할 것이다.
지역사회 돌봄
지역사회 돌봄 제도 개혁 책임자로 임명된 로이 그리피스(Roy Griffiths) 경은 돌봄이 필요한 사람들이 “가능한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돌봄 서비스를 설계해야 한다는 원칙을 제시했다. 이렇게 설계된 ‘지역사회 돌봄’이 과연 그 목적을 달성했는지에 대해 여러 비판이 제기되었다. 웜슬리(Jan Walmsley)는 돌봄 서비스의 평가 방식과 조직화 방식이 전반적으로 정상화 원칙에 맞춰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구들리(Dan Goodley)는 어떤 인식론적 근거가 학습 장애를 개인적인 병리현상으로 이해하게 하고, 그에 따라 일련의 진단 체계가 가동되어 사람들의 삶을 간섭하게 하는지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길먼(Maureen Gillman)과 헤이먼(Bob Heyman)은 어떻게 진단학적 명칭이 특수한 병리현상을 창조하여 개인 정체성의 핵심 요소가 되는지, 그 결과 개인들을 전문가적 개입의 예속 주체로 구성함으로써 전문가 권력을 유지시키는지 보여 준다.
- 영국의 커뮤니티 케어(community care) 제도란?
- 영국에서는 1990년 커뮤니티 케어(community care) 제도를 도입했다. 시설 중심에서 지역사회중심으로의 이동을 표방한 개혁으로 알려져 있다. 1990년에 법이 제정되고 3년의 준비를 거쳐 1993년 시행된 성인 돌봄 제도로서의 커뮤니티 케어는 시장기제의 채택, 지방정부에 서비스 제공책임 이양, 케어매니지먼트 체계의 구축, 공급주체의 다원화 등으로 요약된다.
- 영국의 커뮤니티 케어는 시설보호가 과도하게 팽창하는 것을 견제하는 목적에서 출발하였다는 점에서 탈 시설 논의가 한창인 우리나라 상황과 관련이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2018년 상반기부터 보건복지부는 커뮤니티 케어 정책을 선언하였고, 2019년에 8개 기초자치단체에서 선도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 영국 커뮤니티 케어 제도는 우리나라 제도와 근본적으로 다른 면들이 있다. 영국의 커뮤니티 케어는 아동을 제외한 18세 이상의 장애인과 노인 등을 대상으로 한다. 우리나라 노인 돌봄은 사회보험 재원으로 충당되지만 영국의 커뮤니티 케어는 조세로 운영된다. 영국에서는 이용자의 진입과 서비스 연결은 지방정부가 담당하고, 제공기관의 관리는 품질관리원이라는 별도의 준정부 기구가 담당하고 있어 우리나라 지방정부의 역할과 다르다.
푸코의 영향력
푸코는 우리 자신에 대한 비판적 존재론을 세 가지 영역으로 구분했다. 첫째, 진리에 대한 역사적 존재론은 어떻게 특정 대상이 특정한 지식 체계나 진리 담론 속에서 구성되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학습 장애와 관련하여 그것은 담론적으로 구성된 대상이다. 즉, ‘지능’이라는 개념이 구성되고 그것이 특정한 지적 영역에서 특정한 문제 유형으로 출현하는 방식 자체가 ‘학습 장애’라 불리는 것을 생산한다. 이런 담론적 구성에 의해 비로소 특정 인간 주체가 학습 장애인이라는 지적 대상으로 인식되는 것이다.
둘째, 일정하게 규제된 방식 속에서 타인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거나 타인에게 영향을 받는 권력의 차원이 있다. 예를 들어 푸코는 범죄에 대한 새로운 사유 대상으로서 개인들 내부의 본질처럼 이해된 범죄 속성이 대두되면서 그에 대한 권력의 처벌 방식에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지 규명한다. 새로운 지식과 (충동, 열정, 부적응에 관한) 법적 판단이 대두되고, 처벌은 그런 위험한 인자를 중화시키고 범죄 성향을 바꾸는 데 초점을 맞춘다.
셋째, 푸코의 비판적 윤리학의 영역은 개인들의 자기에 대한 행위 양식을 다룬다. 이 윤리적 차원은 학습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어떻게 스스로 특정 금지나 규제에 복종하거나 저항하는지, 어떻게 스스로를 ‘학습 장애를 가진 사람’으로 정의하면서 특정한 ‘삶의 방식’에 적응하는지, 어떻게 이런 요인들 전체와 자신을 결부시키면서 그것과 상호작용하는지 성찰할 수 있게 한다.
- 학습장애란?
돌봄 서비스에 대한 ‘푸코적’ 분석
푸코는 담론이 하나의 장치나 권력 효과일 수도 있지만 동시에 권력의 장벽이나 장애물, 저항 지점, 대항 전략의 출발지점일 수도 있다고 했다. 담론은 권력을 강화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권력을 폭로하면서 권력을 약화시켜 작동을 멈추게 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저자는 푸코가 도입한 세 가지 차원의 비판적 존재론이라는 분석틀을 통해 돌봄 주거(residential care)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진술을 분석하고, 지역사회 돌봄 주거 안에서 그들에게 작용하는 권력의 형식을 조사하려 한다.
앤과 폴의 진술: 109-110쪽 참고
앤과 폴의 진술에서 첫번째 주목할 점은 그들이 자기 자신을 지칭하는 것도 아니고, 일반적인 사람을 가리키는 것도 아닌, 특정한 상황에 던져진 어떤 사람, 즉 돌봄 공간에 거주하는 어떤 이를 가리키기 위해 ‘여러분(you)’이라는 대명사를 사용한다는 점이다. 돌봄 서비스의 주체로 규정된다는 것은 일련의 행위 규제와 금지사항 속에서 정해진 (스태프들과는 분리된) ‘자리(place)’에 놓인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자리’가 거주자들이 할 수 있는 행위의 한계를 결정하며, 스태프들이 거주자들에게 부과하는 규제를 정당화한다. 그래서 앤은 다른 거주자에게 줄 선물을 사기 위해 외출하는 것은 ‘여러분’의 자리가 아니라고 말하며, 폴은 ‘여러분’은 ‘착하게’ 굴기를, 잠자코 있기를 요구받는다고 말한다.
돌봄 거주인들의 인터뷰는 그들의 생활이 항상 감시되고 감독받으며 ‘착한’ 품행과 ‘나쁜’ 품행으로 판정될 뿐만 아니라, 그들이 언제든 처벌받을 수 있는 존재가 된다는 것을 보여 준다. 조사 참여자들이 진술한 처벌에는 꾸짖음, 외출 금지, 가족들의 주말 방문 불허, 자기방이나 침대에서 나오지 못하게 함, 일정 기간 특정 돌봄의 중단, 심지어 약물주사까지 포함한다. 즉, 어떤 이들이 ‘지적 장애를 가진’ 사람의 범주에 속한다고 여겨질 때 그들의 일상생활과 품행에 대해 얼마든지 제도적 간섭, 판정, 결정, 금지, 명령, 제재가 가해질 수 있는 것이다.
앤과 폴은 그들의 품행을 감독하고 금지의 명령을 부과하는 권력의 형식과 스태프들과의 관계 속에서 자기 자신을 돌봄의 주체로 구성한다. 또한 그 둘의 진술에서 그들이 이런 관리 방식에 대해 남의 눈치 안 보고 “자신의 속엣말”을 하려고 함으로써 자기 의견을 피력할 권리와 능력이 있는 개인임을 인정한다.
이 두 주체 위치 사이에는 긴장이 있으며, 폴과 앤은 사뭇 다른 방식으로 이 긴장을 관리한다. 앤은 마음속에 있는 말을 표현하는 게 중요하다고 보면서도 여전히 ‘여러분’은 ‘할 수 없는’ 것이 있다는 점을 받아들인다. 이에 반해 폴은 돌봄을 받아야 하는 자기 상황을 받아들이지 않고, ‘여러분’은 착하게 가만히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맞서 자기 마음속의 말을 적극적으로 피력함으로써 자기표현적 개인 담론을 구성한다.
돌봄 주거 거주자들의 진술 분석은 그들이 자신에게 가해지는 권력과 그 권력을 형성하는 인간관계에 대해 명확히 인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우리는 그들의 진술을 통해 이런 권력의 주체로 위치 지어지는 방식에 대해 그들이 문제의식을 갖고 있으며, 자신과 돌봄 환경의 관계에 대해 몸에 각인된 긴장을 느끼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들은 이런 권력 작용을 문제적인 것으로 체험하며, 그에 대해 능동적인 위치를 점하려고 하며 그와 다른 형태의 자기 관계를 형성하려고 애쓴다.
‘좋은’ 돌봄의 기준 속에서 서비스를 평가하는 방식은 그 안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 서비스에 대해 문제적으로 느끼는 여러 이슈들을 놓치게 할 수 있다. 이 글의 요점은 이런 돌봄 상황의 사람들이 거기서 작동하는 권력을 문제가 있는 것으로 체험할 가능성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연구자들의 역할은 당사자들 대신 학자들이 어떤 해결 프로그램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돌봄 공간의 거주자들과 함께 그들이 체험하는 권력 작용과 주체화의 방식을 드러내고 문제화하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화는 그들을 관리하는 사람들이 더 이상 그 관리 방식을 ‘자연스럽다’ 거나 문제 될 게 없다고 보지 않게 하는 것, 그래서 제도 안에서 작동하는 권력관계들이 은폐되고 당연하게 여겨지지 않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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