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비평가들은 푸코가 담론에 앞서 실재하는 신체를 부정했기 때문에 그의 작업에는 육체성에 대한 고려가 없다고 주장해 왔다. 이 장에서 나는 손상과 장애 이론에 대해 푸코의 작업이 지닌 한계를 밝히려 한다. 푸코의 작업이 인간의 행위, 특히 장애인의 행동을 제한하는 일련의 실천들이 역사적 산물임을 밝히는 데 기여했다는 걸 부정할 순 없다. 하지만 권력의 “유순한” 타깃으로서의 신체에 대한 푸코의 생각은 신체의 주체적 역할, 즉 자기 변혁과 사회 변혁의 행위주체를 과소평가하게 만든다.
푸코의 연구 영역: 감시받는 신체들
장애와 손상에 관한 유물론적 관점과 달리 푸코적 관점은 장애의 정의와 장애 인구 구성에서 언어와 상징이 지닌 역할을 특히 강조한다. 푸코가 18세기 말로 지정한 역사적 순간에 근대 생의학이 탄생했다. 그 속에서 정상적인 것과 병리적인 것의 구분이 이뤄졌고 장애 개념을 함축한 그런 구분이 손상을 자신의 필요충분조건으로 정립하고 정의하는 권력 형식으로 자리 잡았다. 또한 이런 구분 속에서 ‘정상성’(그리고 그것의 대립물인 비정상)이란 개념이 의료 조직의 핵심 개념으로 확립되었다. 푸코적 관점에서, 정상성을 판정하는 실천은 손상을 신체적 완전성의 결핍으로 규정하는 동시에 무능한 사회적 지위로 규정한다.
의학에 의해 병리화되고, 훈육 권력에 의해 ‘특수’ 공간에 감금되고, 재활 전략에 의해 정상화되는 것이 근대 장애사이다. 그 속에서 푸코의 대감금에 대한 묘사, 일반적으로 (근대 자본주의를 떠받치는 권력의 테크닉과 함께) ‘감금사회’에 대한 묘사는 장애 연구에 계속해서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강력한 개념틀을 제시해왔다.
마그릿 실드릭(Margrit Shildrick)은 영국 장애인 생활수당(DLA)에 대한 분석에서 손상된 신체가 장애를 가진 주체로 생산되면서 감시의 대상이 되는 현대적 사례를 제시한다. 실드릭은 푸코적 관점을 적용하여 장애수당 수급자들에게 과도한 사적 정보 노출이 우려되는 질문지를 작성하게 하는 사례를 분석한다. 그에 따르면 수급자들은 “인격적 책임을 강요받는데 그것은 역으로 자신의 신체에 대해 비판적인 시선을 갖게 만든다.” 또한 “신체 행동들을 일련의 불연속적 기능들로 세분화하는 것은 인간의 신체를 페티시즘적으로 파편화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실드릭은 그 질문지가 이상적인 신체를 가정하는데 그로 인해 장애와 젠더 사이에 중첩이 일어난다고 지적한다. 즉 남성과 정상성이 이상적 신체로 가정될 때 여성과 장애는 뭔가 결핍된 신체로 측정되는 것이다.
실드릭의 주장이나 앞서 언급한 논의들은 근대적 사회 통제 형식에 대한 푸코의 분석이 손상을 장애로 변형시키는 다양한 감시와 감독의 형식에 대한 분석에 잘 들어맞는다는 것을 보여 준다. 하지만 푸코의 관점은 장애인들이 해방 운동을 확립해 나가는 과정을 이해하기 어렵게 만든다. 푸코가 ⌜주체와 권력⌟에서 “우리는 어떻게 우리 자신의 역사 안에 포획되어 왔는지 알아야 한다”고 주장할 때 그는 그 역사의 덫으로부터 빠져나오기 위한 집단적 시도와 그 방법에 대한 성찰을 배제해 버린다. 그러나 장애인은 그 역사의 덫을 빠져나오는 데 일부 성공한 사회 집단 중 하나이다.
푸코의 살 없는 수동적 신체
푸코에게 신체는 “각기 다른 거대한 체제들”에 의해 주조되는 것으로, 권력 게임의 산물이다. 권력은 “각각의 개인들 안으로 파고들어 그들의 몸을 만지고 그들의 행동과 태도, 그들의 담론, 그들의 학습 과정과 일상생활에 주입되기” 때문이다.
⌜주체와 권력⌟에서 푸코는 자신의 작업을 “인간 존재를 주체로 변형하는 세 가지 국면 내지 세 가지 “대상화 방식”으로 나눈다. 그 세 가지는 첫째, 분류화의 실천들, 둘째, 구분의 실천들, 셋째, 자기-주체화의 실천들이다. 첫 번째와 두 번째 대상화 방식에서는 능동적이고 창조적인 주체의 계기가 보이지 않는다. 거기서 주체는 전문적인 분류법과 규제적인 테크닉들의 산물이다. 반면에 세 번째 대상화 방식인 자기-주체화와 자기-테크닉의 배치에 초점을 맞출 때 주체는 반성성의 계기를 획득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자기 ‘자신의 수단’에 의해 행위하는 푸코적 주체는 자기의 테크닉들을 활동하되 그것을 자유의 실천이 아닌, 지배의 반영으로서 활용한다.
우리는 현상학을 통해 푸코의 신체에 관한 관점을 교정할 수 있다. 데카르트적 전통에서 신체는 인식 주체에 의해 지각되는 대상이다. 이와 달리 현상학은 신체를 객체인 동시에 주체로 파악한다. 의미, 지향, 그리고 사회적 관계는 신체적 활동의 산물로, 이런 현상들은 신체적으로 의미화되는 것이다. 현상학의 “의미지향적으로 체험하는 신체”, 즉 자신의 세계를 만들면서 그것에 의해 만들어지는 신체라는 개념은 손상의 사회학과 장애학에서 매우 중요하다.
감성적 체험의 일상 세계에서 신체를 이해하는 현상학은 근대 사회의 통제 기술에 종속된 ‘유순한’ 신체로 환원되지 않는 창조적인 주체를 가정한다. 이와 같은 능동적 신체-주체 개념은 일상적 생활체계에 대한 분석을 이끌어내어 그 속에서 장애인들이 체험하는 억압과 배제, 그리고 그에 맞선 저항과 승리의 경험을 다루도록 추동한다.
신체는 담론을 통해 인식되거나 담론으로 둘러싸일 수 있지만 결코 담론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푸코주의자들은 신체가 특정한 지식체계와 분리해서는 인식될 수 없기에 이것이 타당하지 않다로 주장할 것이다. 하지만 지식이 신체와 분리되지 않고 어떤 의미에서 신체에 근거하고 신체에 의해 형성된다는 점을 취하면, 이런 반대야말로 타당하지 않다.
인간 신체는 예속의 원천인 동시에 자유의 원천이라는 점에서 모순적이다. 푸코는 신체를 이렇게 변증법적으로 보지 않는다. 변증법주의자로서 하버마스(Jürgen Habermas)는 인간이 지배 체제 안에서 역사를 만들어 감에 있어서 구조와 행위주체의 상호작용을 강조한다. 반면에 푸코는 행위주체로서의 육체적 주체를 사회적 삶의 무대에서 제거해 버리는 감시와 통제를 강조한다. 맥네이(Lois MacNay)가 지적하듯 “하버마스가 자유의 변증법을 보는 곳에서 푸코는 냉혹한 훈육 체제에 점진적으로 예속되는 신체를 본다.”
결론에 부쳐
우리는 푸코의 권력 개념이 권력을 지배로 환원시킬 뿐 행위주체의 신체적 참여 가능성을 봉쇄했다는 비판을 무시할 수 없다. 권력에 대한 해방적 관점이 없다면 장애인들은 그들의 삶을 불구로 만드는 차별과 배제에 복종할 수밖에 없다. 만약 권력이 ‘판옵티콘’적이고 벗어날 수 없는 것이라면, 우리는 장애의 정치학을 상상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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