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게 <이동진의 빨간 책방>을 듣는 요즘

veganee 2023. 2. 10. 22:00

 

“‘나는 사랑할 자격이 없어’라고 고백하는 사람은 사랑 앞에서 자기 몸을 한껏 낮추면서 동시에 사랑을 한낱 자격의 문제로 끌어내린다.

자격은 ‘지금’ 없을지라도, ‘언제든’ 획득할 수 있는 것이다. 얻거나 잃을 수 있다. 잃거나 얻을 수 있다.

언제든 잃을 수 있으므로 얻었다고 우쭐할 것이 아니고 언제든 얻을 수 있으므로 잃었다고 아쉬워할 것도 아니다.”

-『사랑의 생애』, (p.15)

 

 요즘 산책하면 '이동진의 빨간 책방'을 듣는다. 오늘은 '사랑의 생애 1부'를 들으면서 오는데 48분 45초에서 이동진 씨가 읽어준 다음 문장이 마음에 꽂혔다. 정확히 말하면 마지막 문장이다. 나에게 언제든 잃을 수 있으나 얻은 것은 무엇이며, 언제든 얻을 수 있으므로 읽었다고 아쉬워할 것은 무엇일까? 요즘은 사랑보다는 직업이나 돈이 먼저 떠오른다. 그 맥락이 어찌되었든 어떤 문장을 간혹 이렇게 내 멋대로 해석하면서 나는 살아가는 일에 위안을 받는다.

 

커트 보니것도 빨간 책방의 제5도살장 편을 들으며 알게 되었다. 보니것의 『고양이 요람』을 어제, 오늘 다 읽었는데 기대 이상이었다. 책의 중반까지도 시종일관 헛소리를 지껄이는 듯 되는대로 이야기를 이어간다는 느낌이어서 약간 지루하기도 하고 어디까지 이러려나 반쯤 포기한 마음으로 읽었더랬다. 마지막까지 읽었을 때는 이 사람 진심으로 원자폭탄에 대해, 윤리의식과 인간 따윈 아무래도 상관없이 발견에만 심취한 과학자에 대해, 전쟁에 대해 비판하는 그 진지함과 절심함이 느껴졌다. 겉으로는 딴소리만 늘어놓는 것처럼 하는데도 어느 순간 그 마음이 느껴지고 알 것 같아져서 뭉클해지고 감동받는 희한한 독서경험이었다. 

 

 밥벌이하는데도 시간이 부족한데라는 생각을 하며 2년 넘게 개발 공부를 하며 개발과 관련되지 않은 책을 멀리했었다. 뒤늦게 <이동진의 빨간 책방>을 듣는 요즘 이동진 씨와 김중혁 씨, 이다혜 씨의 매주 다루는 책에 대한, 또는 밥벌이에 대한, 더 나아가 책을 읽는 행위 자체에 대한 생각들을 듣고 있다보면 진심으로 이제는 그 생각들이 마치 내 생각처럼 되어버린다.

 

우리는 왜 책을 읽어야 하는가? 그건 인간으로서 품격을 지키기 위해, 유머를 잃지 않기 위해, 내가 아닌 다른 사람를 이해하고 싶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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